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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줌으로 인해 상처 받기

요즘의 나는.. 무엇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요즘의 나는.. 참 불행한 것 같다.

요즘의 나는.. 키를 잃어버린 배와 같다.

요즘의 나는..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날 것 같다.

 

요즘의 내가 된 이유는.. 긍정적인 자아상을 갖지 못해서 그런다. 물론 성격적으로 타고나는 것일지 모르겠으나, 어제 한 모임에서 새삼스럽게 느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 에너지를 전파한다고.

난 우리 딸아이가 더 자신만만하고 더 적극적인 아이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의 내 행동을 살펴보니 그 자신감과 긍정의 싹을 자르고 있었다. 알면서도 실천은 잘 되지 않는다. 잘한 것만 보고 칭찬거리만 찾으면 좋으련만. 부족하고 고쳤으면 좋겠는 면만 눈에 밟힌다. 결국 매를 들고 손바닥을 몇대 때리고 으름장을 놓고.. 아이의 사기와 자신감을 여지없이 짓밟아 버린다.

아이를 믿어주는 것. 그것은 그 아이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언제부터 온전히 아이한테 그런 힘을 줘도 되는걸까? 이렇게 다그치고 달래고 어딘가 목표에 도달했을 때 아이 스스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까?

사소한 일에도 주눅들고 울음을 터뜨리고 하는데 더 강하고 자신만만한 아이로 어떻게 키운단 말인가.  모성은 대물림된다고 했던가? 내가 걸어온 전철을 아이에게 밟게 하지 말자. 그러려면 우선 더 사랑하고 더 따뜻하고 더 인내하는 엄마여야 하는 것일까? 더 조이고 더 매섭고 더 닥달하는 엄마가 되어야 하는 걸까? 양끝에 놓인 길에서 갈팡질팡 여기저기로 쉽게 휩쓸린다. 무엇 하나도 정답일리 없다. 다 그 아이에 따라 다른 것. 우리 아이는 어떻게 키워져야 하는 아이일까?

한심한 나의 한심한 하루

요즘 다시 난 내가 한심스럽다. 삶의 굴곡이야 있겠지만 난 어쩜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길인지 모르겠다. 4~5년전 신랑이 자기는 이미 꺽어졌다는 농담처럼 한 말이. 그 땐 그냥 겸손의 말이겠거니 생각했는데 39이라는 나이는 충분히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한다. 공감하게 한다.

내 모습이 얼마나 한심한가 하면.. 금요일 저녁이다. 좋아하는 선배와 친구들과 채팅으로 송년모임을 잡는다. 오늘 보자는 말에 손사래를 치며 오늘은 아이들 당번이어서 일찍 들어가야 된다고 한다. 집에 가서는 아이들 숙제 시킨다. 저녁 먹으려고 냉장고를 둘러보니 마땅한게 없어서 간장과 계란에 밥을 비벼 먹으니 딸아이가 엄마만 맛있는 것 먹는다고 타박이다. 한숟가락씩 나눠주고 먹으니 이런 좀 더 비벼먹어야겠다. 밥 먹다가 반주로 와인한병을 땄다. 웬만하면 참겠으나 간장비빔밥에 와인이라니 정말 너무 안어울리는 조합 아닌가.. 결국 와인한병을 다 비우지 못했다.

토욜이다. 아이들 학교 가는 토요일. 신랑은 회사 출근하고 나 또한 과제하러 학교 간다. 덜덜 떨며 대충 과제물을 정리하고 집에 왔다가 오늘 모임이 있는 등촌동 가는 길.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교통정체로 우리집 식구들은 모두 패닉상태에 빠졌다. 어쨌든 간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보니 기쁘고 편안한 맘을 감출 길 없다. 역시나 바지런한 판공엄마 김밥도 말아놓고 요리도 척척해준다. 앉아서 놀고 먹기 미안할 만큼. 곽님네는 희재가 아직 어린데다 감기까지 걸려서 편안하게 놀지는 못하는 것 같다.

한참 먹고 마시고 이야기 하다 보니.. 나 혼자만 떠들거나 내 이야기만 하거나 다른 사람들 관심사가 아니거나 뭐 그런 분위기가 느껴졌다. 지금 이 나이 때는 뭐가 그리 불만인걸까? 뭐가 그리 불안한걸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봤다. 지켜야할게 너무 많아서.. 인 것 아닐까? 다 버릴 수 있다면 있거나 없거나 아무 상관없다면, 자존심같은 거 던져버릴 수 있다면.. 더 가벼운 인간이 될 수 있을텐데 말이다.

이 친구들과의 만남이 어언 10년 가까이 되는데.. 결혼식, 아이들 돌잔치, 입학식.. 이렇게 소소한 일상을 같이 나누었는데.. 그들이 언제 가장 즐거웠는지 생각해보면, 그래도 아이들 입학전 그 시기인 것 같다. 아직 젊고 아직도 스스로에게 미래 무언가를 기대하던 나이였다.

예전 같으면 당연히 술 한잔 마시고 자고 갔을텐데.. 뭔지 모를 불편함이 대리운전기사를 불러 집에 오게 만들었다. 불편함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일요일 아침 신랑은 아침 일찍부터 축구하러 가고. 딸아이들 깨워서 국수 먹인 다음 공부시킨다. 영어숙제하고 수학공부하고 교회에 보낸다. 드디어 내 시간이다. 어떻게 잘 보낼까 하다가 슈퍼에 들러 막걸리를 산다. 고로케빵도 샀다. TV를 켜고 무얼 볼까 이리저리 탐색하다가 화려한 휴가를 보게 됐다. 하필 눈물 나는 영화잖아..

그러다 신랑이 오고 깜빡 잠이 들었다. 비몽사몽간에 깨어보니 아이들은 집에 있고 저녁시간이 다 되었다. 라볶이로 한상 차려서 나가수를 시청하며 배불리 먹는다. 나의 한심한 주말의 마지막 하일라이트다. 밥 먹이고 목욕시키고 아이들 가방 챙기고.. 마지막으로 이불에 누워 비행기 태워주면 주말이 끝이다.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이런 날들..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What a depressful world

간만에 블로그에 길을 길게 썼는데 다 날라가 버렸다.

대한민국 생활 보고서

오늘은 간만에 시간이 남아 가계부 정리를 해보았다. 엑셀 시트로 관리하던 카드대금 사용내역이 진화를 거듭하여 생활기록표가 되었다.

지난 10월 한달간 대한민국 4인가족 생활기록
주거비(대출금) 26%
식비 16%
의복비 5%
교육비 28%
교통통신비 7%
기타(경조사,용돈) 18%

매달 다소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정도 수준이다. 두말 할것없이 사교육비 비중이 높다는 것. 대략 30%쯤 된다. 연봉 5천 받는 사람은 자식들 교육비로 연간 1천5백만원을 쓴다는 소리다. 그나마 아이들이 하나일 경우는 좀 낫겠지만 누구처럼 넷을 키운다면 그 비용으로 네아이를 나눠줘야 한다.
주거비로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그나마 직장 다니는 동안 대출금 다 갚으면 성공한 인생이다. 기타로 취급된 비용 중 큰 비중은 매달 드리는 부모님 용돈이다. 아이들 사교육비, 깔고 앉아있는 집에 드는 비용, 노모 모시는 비용. 대체 나를 위해 사용하는 돈은 어디 숨었나?

이러한 이유로 변변한 옷한벌, 명품백 하나 갖추지 못하는 고달픈 직장인이다. 눈에 띄는 것은 교통통신비 비중이 의외로 높은데 통신비 비중이 약 2%정도 된다. 통신회사에 내는 돈이 그러니까 5천 받는 사람이라면 연간 1백만원 매월 10만원 가까이 든다는 사실이다. 통신비에는 일반전화, 휴대전화, IPTV, 인터넷회선, 인터넷전화가 다 포함되어 있으니 어쩔수 없는 노릇이지만. 더이상 지출할 의향은 없다.

한달 쓰고 살기에도 빠듯.. 저축항목이 없으니 큰일이다. 천년만년 일할 수도 없고, 자식들이 부양할 능력도 없을 것이고, 위 지출 구조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곤 사교육비를 저축항목으로 쪼개는 것인데. 대한민국 부모로 사는 사람으로서 빚을 내서라도 자식 교육은 하고 싶으니 구조 변경이 어려울 것 같다. 이상..

신선한 충격과 자극

반성하고 반성하고 반성해본다. 그래도 변화하고 변화하고 변화하기 어렵다.
우연히 알게 된 사이트에 들어와 멋진 이들의 고견을 보고 있자니 내가 얼마나 낮은 곳에서만 머물러 있었는지 현실에 안주하고 살았는지 깨닫게 된다. 대기업에 14년째 다니고 있으면서 이제서야 반성의 길로 접어들었다.

삶의 목표와 전략이 필요하다. 오늘 본 어떤이의 글에서 vision이란 미래를 보는 것이란 말이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눈으로 본 그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서 무모한 도전과 끝없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나에게 비전이란 무엇일까? 어떤 종류의 비전이 남아있을까? 해머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다. 다시 스무살 청년이 되어 도전하고 뛰고 싶다.

현재 가진 걸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용기, 투자란 미래 실행가능한 이익을 위해 현재 소비를 늦추는 것이라고 했던가? 지금 이순간 무엇에 투자해야 할 것인가.. 삶이 너무 극과 극을 오간다. 불과 한달전만 해도 오늘의 고민은 오늘은 어떤 반찬을 어떤 국을 끓일까? 오늘은 청소를 건너뛸까? 아줌마들 하고 모여 수다 떨까? 누구랑 맥주한잔 할까? 이런 것들뿐이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게 아니라, 내가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 요즘의 나는. 그렇다고 특출나게 뭔가 할 능력도 없다. 나의 비전,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해 봐야겠다. 내 나이 15 중학생때 그때는 지금보다 멋졌던 것 같다. 나는 프로그래머가 되고자 집앞 컴퓨터학원을 다녔다. 남들은 영수 공부할 시간에 말이다. 하필 야간에 하는 컴퓨터수업은 주로 상고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회계처리 같은 수업들이었다. 코볼이나 포트란 같은 언어로 뭔가 숙제를 해야했었다. 마침 또 정보처리기능사 시험이 끼어 있어서 대충 그들과 부대끼며 뭔지 모르지만 시키는대로 했다.

쓸데없이 해보겠다고 나서서 괜히 시간만 낭비했었는데, 어찌됐든 중요한 건 그 나이에는 나름 비전을 세웠다는 거다. 앞으로 IT가 뜰꺼라는 생각. computer science를 전공해야겠다는 생각. 내가 대학에 갈때 즈음엔 정말 IT가 굉장히 촉망받는 직종이 되어 있었다. IT는 여학생들에게도 상당히 매력적이고 말이다. 여차저차 하여 전산학과에 입학한 나는 나보다 더 범생스러운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대학에 들어가서도 꾸역꾸역 공부를 했던 것 같다.
아니 그보다 대학에 들어가서 진짜 공부를 시작했다. 남을 위한 공부가 아닌 나를 위한 공부. 내가 제일 못하는 영어 기필코 정복하겠다는 마음에 영어회화학원도 아침마다 다니고 성문종합영어도 다시 들었다. 그때부터 정말 조금만 더 꾸준히 했더라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자산으로 남았을텐데 아쉬운 맘이 크다. 91년의 일이니 20년이 지난 지금 1만시간도 더 했을텐데 말이다. 대강의 학교 과목들은 벼락치기와 족보로 남들 보이기에 부끄럽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다. 게다가 범생이 친구덕에 조기 졸업까지 하고선 당시 STM(LGCNS)에 입사지원서를 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 회사에 입사했더라면 난 지금 굉장한 프로그래머가 되어 있을까? 적어도 PM 정도는 하고 있을 것 같고, 형편상 프리랜서로 뛰고 있을 수도 있겠다. 근데 생에 최초의 입사시험이라 아무런 준비도 없이 면접보러 당일날 시골에서 상경했고 결국 떨어지고 말았다. 어찌 보면 내 인생에서 최초의 실패이지 않나 싶다. 그러나 그다지 입사하고픈 생각도 없이 한번 봐 본거라 그닥 실망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22살의 나이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시기이지 않는냐

여차저차 하여 대학원 그것도 알고리즘 랩에 들어가 막내로 시다바리 하다 보니 그다지 컴퓨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디어가 샘솟는 것도 공부가 적성에 맞는 것도 아니어서 박사과정 진학이나 유학은 일찌감치 접었다. 그때부터 도전정신이 줄어들고 있었나 보다. 졸업후 당시 잘나가던 통신공사에 별다른 수고로움 없이 운좋게 입사했다. 아 옛날이여. 그때만 해도 의욕이 넘치던 시기였는데.. 낮은 업무강도에 몸부림치면서 이직을 고민했었는데 말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

entering new era

새로운 블로그 시대를 열다.

어떤 주제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할지 고민해 보자. 내 생각에만 갇혀 지내고 있었지 않았나. 근시안적인 문제해결에만 집착하고 살아온 것 같다. 보다 전략적으로 보다 개방적으로 세상과 소통하면서 살아보자.

우선의 주제는 좋은 엄마 되기. 근데 좋은 엄마가 된다는 것은 사람을 좀스럽게 만드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세상에 쫓겨서 살지 말고 세상을 이끌고 나가라고 그렇게 살아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은데. 실천이 안된다. 매일매일의 숙제와 일과에 시달리는게 아니라 크고 원대한 꿈을 꾸게 하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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